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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 근간 흔든 레고랜드 사태, 그 전말과 배경 (上)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10.2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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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여지훈 기자] “금융시장의 근간인 ‘신용’을 뒤흔든 사건이죠. 이번 사건을 전후로 많은 것이 뒤바뀌겠고, 이것이 향후 어떤 트리거로 작용해 얼마나 큰 여파를 몰고 올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최근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발언으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에 불어닥친 한파를 평해달라는 요청에 한 금융업계 관계자가 답한 말이다.

“사실 PF 시장에 대한 우려는 지난해부터 있었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이커머스 시장이 크게 확대되면서 물류센터들이 많이 지어졌는데, 이 물류센터 조성 사업 대부분이 부동산 PF를 통해 이뤄졌거든요. 그런데 당시 물류센터들이 과잉공급된 탓에 수익성이 떨어지는 곳이 발생했고, 결국 대출받은 자금을 못 갚는 곳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금융권에 몸담은 지 어언 수십 년. 기업금융에만 10년 넘게 종사했고, 여전히 현직에서 뛰고 있는 소위 ‘통’의 말이었기에 그 말에 담긴 무게가 사뭇 무겁게 다가왔다.

최근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레고랜드 관련 발언으로 금융시장 전반에 한파가 불어닥쳤다. 사진은 강원도 춘천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 [사진=연합뉴스]
최근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레고랜드 관련 발언으로 금융시장 전반에 한파가 불어닥쳤다. 사진은 강원도 춘천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 [사진=연합뉴스]

각국 중앙은행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서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에 진입했다는 소식이 종종 귀에 들려오는 요즘이다. 연일 고공행진 하는 물가를 잡고자 전 세계 차원에서 이뤄지는 이러한 통화 긴축은 한 국가의 정책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거시적 요인임이 분명하다.

그런 와중에 국내 부동산 시장을 냉각하는 대형 악재가 또 하나 터졌다. 아직 전 세계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거시적 요인으로까지 확대되진 않았지만, 국내 부동산 시장, 나아가 금융시장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을 것이란 평가다.

문제가 터진 곳은 바로 부동산 PF 시장에서였다. 올해 7월 취임한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지난달 28일 “(강원도가) 레고랜드의 빚보증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법원에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 신청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문제의 불씨를 제공했다.

“레고라고? 그 애들이 끼워 맞춰 조립하는 장난감 브랜드 말야?”

맞다. 그 레고다. 다만 김진태 지사가 말한 레고랜드는 레고 블록을 테마로 한 글로벌 테마파크를 말하는 것으로, 본래 덴마크의 레고그룹에서 소유했으나 2005년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인 블랙스톤에 경영권이 매각됐다. 이후 다시 글로벌 테마파크 운영사인 멀린 엔터테인먼트에 매각됐고, 2019년 레고그룹이 블랙스톤과 함께 멀린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면서 경영권을 되찾아왔다.

국내에서는 2011년 9월 최문순 당시 강원도지사가 멀린 엔터테인먼트와 ‘춘천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 개발사업’에 관한 투자합의각서(MOA)를 체결하면서 레고랜드 사업이 본격화됐다. 사업을 위한 재원은 1000억원의 자본을 투자하기로 한 멀린 엔터테인먼트를 포함해 컨소시움사가 출자한 총 1500억원에 더해 국내외 금융사로부터 빌린 장단기 차입금 1800억원, 상업시설 분양을 통한 영업수익금 등으로 조달할 계획이었다. 당시 사업비는 5000억원 이상, 완공 시기는 2015년으로 추정됐다.

강원도는 사업 추진을 위해 2012년 8월 레고랜드 개발사업 시행사로 특수목적법인(SPC)인 ‘엘엘개발’을 설립, 지분 44%를 출자했다. 엘엘개발은 2013년 레고랜드 코리아 개발사업에 필요한 자금확보를 위해 유동화 SPC인 ‘KIS춘천개발유동화’로부터 대출을 받았고, KIS춘천개발유동화는 그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해 이를 증권사에 매각함으로써 대출자금을 조달했다.

잠깐. PF? SPC? 유동화? ABCP? 어째 하나같이 익숙지 않은 용어투성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개념들인 만큼 무심코 지나가기엔 모두 중요한 단어다. 그러니 간략히나마 차근히 살펴보자.

우선 ‘자산 유동화’란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자.

자산 유동화란 재산적 가치는 있으나 사고팔기는 쉽지 않은 자산을 담보로 증권을 발행해, 이를 유통함으로써 자금을 확보하는 일련의 메커니즘을 말한다. 그 과정은 우선 유동화 전문 SPC를 설립해 자산보유자로부터 자산을 양도받고, 이렇게 양도받은 자산을 기초로 SPC가 유동화 증권을 발행해 금융사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때 은행, 증권사, 저축은행, 캐피털 등 다양한 금융사가 참여할 수 있으며, 이들 금융사는 직접 해당 증권에 투자하거나, 단순 중개자로서 증권을 다른 투자자에게 판매할 수도 있다. 이때 증권의 원리금 상환은 대상 자산의 관리와 운용, 처분 등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으로 이뤄진다.

자산 유동화는 자산보유자와 투자자 모두에 이점을 제공하기 때문에 기업금융에서는 빈번하게 활용되는 금융기법이다. 자산보유자는 시장에서 쉽게 사고팔 수 없는 자산을 굳이 불리한 조건으로 매각하지 않고도 이를 담보로 수월히 자금을 확보할 수 있으며, 신용위험의 절연을 통해 본인의 신용등급보다 높은 신용등급으로 증권의 발행이 가능해져 좀 더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빌릴 수 있다. 더하여 자금조달원을 다양화함으로써 유동성을 적기에 확보해 자금운영의 유연성을 키울 수 있다.

투자자로서도 금융상품의 폭이 넓어짐에 따라 다양한 신용위험과 수익률을 제공하는 상품을 취사 선택해 투자할 수 있다는 장점을 누릴 수 있다. 또 유동화 증권은 같은 신용등급을 가진 증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므로 좀 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도 있다.

이번에 논란이 된 부동산 PF 역시 차주의 신용도나 담보 등을 평가해 돈을 빌려주는 일반 대출과 달리, 향후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나올 것으로 기대되는 부동산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하는 자산 유동화의 일종이다. 차주가 아닌 프로젝트별로 평가해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법이라 하여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란 이름이 붙었다.

지방자치단체 신용도에 기초한 유동화 거래 구조 [사진=한국기업평가 제공]
지방자치단체 신용도에 기초한 유동화 거래 구조 [사진=한국기업평가 제공]

사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부동산 개발사업은 자금조달부터 토지매입, 인허가, 개발, 분양에 이르기까지 사업 전반을 건설사가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는 다른 주체에 위탁하는 도급방식보다 높은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으나, 자금부담이 큰 탓에 사업이 중단·지연되거나 분양성과가 저조할 경우 건설사의 재무구조를 급격히 악화시킬 위험이 있었다.

실제로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많은 건설사가 도산했다. 부동산 개발에서 건설사의 과도한 자금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 시행과 시공을 분리하는 사업구조가 나타난 것도 이때부터다. 즉 전문 시행사가 토지소유권 확보 및 인허가를 맡고, 건설사는 시공만 담당하는 사업구조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행사의 자금조달 방법으로 부상한 것이 바로 부동산 PF다. 가령 “우리가 이러이러한 테마파크를 조성하려고 해. 그런데 사업을 추진하려면 큰돈이 필요한데 당장 수중에 그만한 돈이 없네. 워낙 큰돈이라 일반 대출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아. 하지만 개발사업이 잘 진행되면 3년 뒤부터는 입주업체 입점이 시작되면서 분양금이 들어올 거고, 개장하는 4년째부터는 관람료 수익도 꾸준히 들어올 거야. 이런 수익들로 차츰 돈을 갚아갈 테니 그 사업성을 보고 미리 돈을 빌려줄 수 있을까?” 이런 식이다.

최근 화제가 된 테마파크를 예시로 들었지만, PF는 이외에도 대규모 투자를 요구하는 에너지 개발이나 인프라 개발, 다른 종류의 부동산 개발에도 자주 활용된다. 또 분양대금이나 운영수익 등 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발생하는 현금으로 사업비를 충당하고 대출을 순차적으로 상환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를 거꾸로 말하면, 예기치 않은 일로 사업이 중단되거나 프로젝트의 사업성이 저하될 경우, 또 분양성과가 예상보다 저조할 경우 시행사는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어 부도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특히 대부분 시행사가 자기자본 규모가 영세하므로 투자자들로서는 아무리 좋은 사업계획을 제시받았다 한들 선뜻 돈을 빌려주기 어렵다.

바로 여기서 ‘신용보강’이란 개념이 등장한다. 신용보강이란 문자 그대로 ‘신용을 보강한다’는 의미로, 국내 부동산 PF에서는 시공사가 연대보증, 채무인수 등 다양한 형태로 신용보강을 제공해왔다. 신용보강이 있기에 시행사가 추진하는 사업계획이 신뢰할 만하고, 투자자 측에서도 훨씬 안심하고 돈을 빌려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공사에 의존하는 이러한 신용보강 방식은 사실상 시공사가 사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재무부담을 떠안는 이전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 사업이 중단·지연되거나 분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그 부담이 고스란히 시공사로 가는 문제가 있었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신용보강을 제공한 다수의 건설사가 재무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도산하자, 기존 시공사에만 의존하던 신용보강 방식을 변화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받기 시작했다. 때마침 2011년부터 국내에도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됐는데, IFRS의 도입으로 건설사가 보증한 PF 대출과 유동화 증권이 우발부채(아직 채무로 확정되진 않았으나 특정 상황 발생 시 채무로 확정될 가능성이 있는 채무)로 인식됨에 따라, 건설사들은 당사의 재무상태를 악화하는 기존의 연대보증이나 채무인수 방식 외에 자금보충, 책임분양, 책임준공 등 변형된 형태의 신용보강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또 2013년부터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일정 수준 이상의 자기자본을 갖춘 증권사는 일반 여신 업무 외에도 기업어음 매입, 기업채권 매입 등 다양한 형태로 기업 신용공여 업무를 취급하는 게 가능해졌다. 이번 레고랜드 관련 PF에서도 증권사가 유동화 증권 매입을 통해 사업 주체에 돈을 빌려줬는데, 이 역시 기업 신용공여의 한 형태다.

PF 관련 신용공여는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기에 점차 증권사를 중심으로 금융권의 신용공여가 확대됐고, 이들 금융사는 유동화 증권 매입보장, 대출채권 매입 확약 등의 형태로 신용보강을 제공했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시행사, 시공사, 금융사 등 여러 사업 참여자들이 위험을 분담하는 현재의 PF 구조가 안착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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