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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부발전의 원칙과 1점짜리 노동자 목숨

  • Editor. 조근우 기자
  • 입력 2022.09.2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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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조근우 기자] 2018년 12월 11일 새벽. 한국서부발전 사업장인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24세 청년 김용균씨는 끝내 퇴근하지 못했다. 2인 1조로 근무해야 하는 야간근무 수칙이 있었지만, 사측이 비용절감을 위해 1명씩만 근무시켰고 결국 참담한 사고가 발생했다.

일명 ‘김용균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고는 근본 원인부터 처리과정까지 산업현장에서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는 ‘위험의 외주화’ 실태를 여실히 보여줬다.

사고 원인은 한국서부발전이 단가를 낮게 제시하는 하청업체에 일을 맡기면서 2인 1조 업무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동료 노동자들은 울분을 토했다. 김용균 씨는 기계에 끼여 숨진 지 4시간여 만에 발견됐고, 사측은 시신 발견 후 4시간가량 지나서야 경찰에 신고했다.

또 태안화력 협력업체 한국발전기술 직원들에 따르면 사고 발생 직후 담당 팀장이 일부 직원들에게 “언론 등 외부에서 내용을 물어보면 일절 응답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1인 근무가 문제가 될 조짐을 보이자 “외부에 사고가 난 곳은 자주 순찰을 하지 않는 곳이라고 이야기해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지며 사건축소 의혹도 제기됐다.

이 사고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같은 달 27일 국회에서는 산업 현장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발의돼 2020년 1월 16일부로 시행되기에 이른다.

사고가 발생한지 어느덧 4년의 시간이 흘러 지난 2월 김용균 사건 1심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한국서부발전 소속 임직원들은 태안발전본부의 설비 소유자로서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생명, 신체의 안전을 확보하도록 설비를 관리하고 업무지침을 감독하는 등의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위반해 업무상과실치사죄의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의 백남호 전 대표이사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160시간의 사회봉사가 선고됐다. 함께 기소된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 소속 임직원들에게는 각각 벌금 700만원,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등이 각각 선고됐다. 이 판결에 쌍방 항소가 이뤄졌다.

이처럼 시간이 흐르고 사건 국면이 계속 변해가지만, 한국서부발전과 태안화력발전소는 아직도 2018년에 머물러 있는 듯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2018년 사고 후 충남 태안군 태안읍 한국서부발전 본사 정문 옆에 태안화력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 씨를 추모하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주변에는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등을 촉구하는 플래카드가 가득 걸려 있었다.  [사진=연합뉴스]
2018년 사고 후 충남 태안군 태안읍 한국서부발전 본사 정문 옆에 태안화력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 씨를 추모하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주변에는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등을 촉구하는 플래카드가 가득 걸려 있었다.  [사진=연합뉴스]

■ 한국서부발전, 위험의 외주화는 현재진행형

“사고에 대한 재해자의 귀책사유가 불명확하고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며, 국가계약법상 처벌 가능한 요건(동시에 사망한 근로자 수가 2명 이상)에 충족되지 않는다. 또 고용노동부 등 정부의 정책과 관련해 사실상 계약해지가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서부발전 측은 ‘한국발전기술’과 계약을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한국발전기술은 2018년 석탄 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고(故) 김용균씨가 근무하던 회사다.

21일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은 한국서부발전이 고 김용균씨 사망사고에도 해당 하도급사와 3년이 넘도록 용역계약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자근 의원이 한국서부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 연료 환경설비 운전용역을 수행하고 있는 하도급사는 한국발전기술이었다.

2019년 4월 국무총리 산하에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에서 연료·환경설비 운전업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고, 경상 정비 업무는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전KPS로 통합·재공영화하라는 내용의 22가지 권고안이 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부의 지침 변경만 기다리며 용역계약을 지속해온 것이다.

구자근 의원은 “사고 책임이 있는 하도급사와 계약을 지속하는 것은 서부발전 측과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고서는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여전히 진행 중인 위험의 외주화 [사진=연합뉴스]
여전히 진행 중인 위험의 외주화 [사진=연합뉴스]

한국서부발전, 정규직과 하청업체 생명의 가치도 달랐다

한국서부발전의 태안화력발전소는 노동자 사망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곳이다.

2017년에 11월에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에서 작업 중이던 하청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에도 사건을 숨기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노동자 안전사고가 발생했으나 현장 관계자들은 통상적인 조치를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직후 태안소방서나 태안화력 내에 있는 태안화력방재센터에 사고 사실을 알려 구급대원의 안전조치를 받지 않았고, 구급차량 대신 자가용으로 부상당한 근로자를 옮겼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 지회가 2018년 공개한 ‘태안 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주요 안전사고/사망사고 현황’에 따르면 2010년부터 8년 동안 이 발전소에서는 모두 12명의 하청 노동자가 사고로 숨졌다. 부상자도 19명이었다.

이같이 노동자 사망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는 가운데, 한국서부발전이 사람 목숨을 정규직이냐 하청업체냐에 따라 다르게 평가한다는 사실이 불거져 또다시 논란을 빚기도 했다. 2019년 MBC보도에 따르면 한국서부발전은 산업재해로 사람이 숨졌을 때 발전사 직원은 –1.5점, 하청 직원은 –1점, 발전시설 건설 노동자가 숨지면 0.2점을 깎았다.

한국서부발전 측은 “당시 보도가 나온 이후 점수 제도는 바로 폐지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서부발전이 사고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있으면 원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원칙이 노동자의 생명보다 우선시 될 수 있는지. 지금처럼 원칙을 지켜왔다면 앞선 사고들이 발생했을지. 원칙이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기 위한 방패막이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한국서부발전 임직원들의 가족 중 일원이 이런 사고를 당했다면 그들은 지금과 같이 원칙을 내세워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을지.

한국서부발전의 원칙이 안전불감증을 합리화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이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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