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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훈의 이야기力] 여전히 발붙인 이곳, 포기해선 안 되는 이야기 ⑤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9.16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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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서두에 언급한 게임의 예를 다시 들어보자. 이미 20년 전 유행했던 게임인 만큼, 기자가 플레이했던 게임은 그래픽 수준이나 캐릭터 움직임 등에 있어 결코 오늘날의 게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뒤처져 있었다. 또 당시에도 그보다 더 현실감 있게 풍광이나 인물을 묘사한 게임은 많았다. 그럼에도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해당 게임에 매력을 느끼고 빠져들었는지는 분명 생각해 볼 만한 화두를 던져준다.

사람이 가상세계에 매력을 느끼기 위한 요소는 단순히 시각적인 그래픽, 마음을 묘하게 울리는 음악에 있지 않다. 아니, 적어도 그것들은 보조 역할을 할 순 있어도 핵심 요소는 아니다. 이미 20년이나 지난 게임의 추억을 여전히 많은 이가 그리워하는 것은 해당 게임이 ‘인간적 감수성’을 자극할 만한 요소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눈 가득 담긴 하늘의 광활함, 얼굴에 맞부딪치는 바람의 촉감, 사랑하는 이와 마주친 시선, 서로에게 건넨 웃음 속에서 전해지는 미묘한 감정들. 실제 육체를 통해서만 경험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을 가상세계는 아직 완벽히 구현해낼 수 없으며, 그렇기에 우린 여전히 현실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야 한다. [사진출처=언스플래시]
두 눈 가득 담긴 하늘의 광활함, 얼굴에 맞부딪치는 바람의 촉감, 사랑하는 이와 마주친 시선, 서로에게 건넨 웃음 속에서 전해지는 미묘한 감정들. 실제 육체를 통해서만 경험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을 가상세계는 아직 완벽히 구현해낼 수 없으며, 그렇기에 우린 여전히 현실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야 한다. [사진출처=언스플래시]

인간적 감수성. 그게 무슨 뜻일까? 다시 한번 김상균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메타버스에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 정보가 생성되며 기록되고 있으나, 그 데이터와 정보를 시간과 사람들의 관계와 엮어낸 이야기가 부족합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마음을 움직여서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데이터나 정보가 아닌 이야기입니다.”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 그 핵심은 이야기다. 특히 나와 너, 우리가 함께 어울리며 만들어내는 이야기 말이다. 결국 다시 원점, 이야기로 돌아왔다.

“하지만 우린 현실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꼭 게임이나 메타버스 안에서의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있다. 현실에서는 계산적이고 남을 이용하는 사람도 때론 선뜻 베풀 줄 알고, 현실에서는 이타적인 사람도 때론 울분을 털어놓고 욕할 수 있는 세계. 서로의 얼굴을 알지 못하면서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쉽게 친밀감을 느끼며 여러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세계. 그곳이 바로 메타버스다. 현실을 닮았으나 현실과 다르며, 현실과 다르지만 또한 현실을 닮은 세계 말이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적을 함께 물리치며 쌓는 동지애,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라도 좋다. 그저 몇 분이라도 함께 일상을 나누고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많은 이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특히 타인에게 섣불리 다가가거나 농담을 던지기조차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면, 혹은 평소 성격이 외향적인 편이 아니라면 메타버스가 선사하는 또 다른 일상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

용기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고, 또 그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줄 상대가 있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겐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일 수 있다. 어쩌면 플레이어들 스스로가 깨닫기도 전에 이미 서로가 서로의 삶에 구원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현실에서는 시·공간적, 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어려웠던 대화를 메타버스에서는 훨씬 수월하게 나눌 수 있으며, 그러는 동안 쌓인 우정을 기반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 자체로 게임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다.

설령 게임의 배경, 세계관, 시나리오, 캐릭터, 음향효과 등 많은 요소가 엉성하기 짝이 없을지라도 단지 소통할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은 기꺼이 그 세계를 사랑할 수 있다. 게임이란 이름의 가상세계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비단 성장하는 캐릭터를 보며 얻는 기쁨이나,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되는 데서 오는 성취감 때문만은 아니며, 때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론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다른 플레이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앞서 예로 든 큼직한 사건들처럼 반드시 진중하거나 치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게임 속 많은 이야기가 메타버스 특유의 익명성과 인스턴트적 관계로 인해 가볍거나 대수롭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며,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점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서로 크게 개의치 않고 소소한 이야기를 흔쾌히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하나 명심할 게 있다. 그렇게 나누며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아무리 매력적이라고 한들, 결국 언젠가 다시 현실을 살아가야 할 사람으로서 거기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게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먼 미래에는 어찌 될지 모르나, 적어도 아직은 게임 없이 현실을 살아갈 수는 있어도 현실 없이 게임 세계를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직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이상 현실을 도외시한 채 게임 속 삶에 지나치게 빠지는 것은 위험하단 얘기다.

가상세계가 현실에서는 상상조차 못 했던 바를 꿈꾸게 하고, 실제로 이미 몇몇은 구현했다는 측면에서 현실보다 앞선 부분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기술력만으로 현실을 완벽히 대체하기란 불가능하다.

두 눈 가득 담긴 하늘의 광활함, 얼굴에 맞부딪치는 바람의 촉감, 사랑하는 이와 마주친 시선, 서로에게 건넨 웃음 속에서 전해지는 미묘한 감정들. 실제 육체를 통해서만 경험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을 가상세계는 아직 완벽히 구현해낼 수 없으며, 그렇기에 우린 여전히 현실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야 한다. 가슴으로 간직한 여러 뜨거운 감정들을 메타버스 속 몇 마디 문장이 아닌, 현실에서의 언어와 몸짓으로 차근하고도 현명히 풀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메타버스에 열광할 때 그런 미래지향적인 꿈에 기꺼이 환호하면서도, 지금 곁에 있는 이들, 소중한 이들을 돌아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메타버스는 현실의 대체물이 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 된다.

메타버스는 현실에서 여러 제약으로 곤란했던 여러 기능을 확장하는 보완책으로 이용할 때 가장 바람직하며, 가끔은 현실의 고민에서 벗어나기 위해 빠져들지언정 그것이 지나치게 오래가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우리 각자가 건전한 메타버스 사용법을 익힐 수만 있다면, 우리의 현실 또한 더욱 풍요롭고 즐거워질 것이다.

경제산업팀장

 

■ 글쓴이는 – 가장 외로웠던 시절, 게임이란 메타버스를 처음 접했다. 외로움이 컸던 만큼 그곳에서의 삶을 지나치게 사랑한 나머지 ‘게임 중독’ 심지어 ‘게임 폐인’이란 낙인까지 찍혀 정신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만약 내 자녀가 게임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한다면, 그 세계에 빠진 자녀를 탓하기에 앞서 내가 충분히 자녀에게 관심을 쏟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자녀를 더욱 사랑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할 수 있다면 자녀와 함께 게임을 플레이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취재 후기 – 시기는 각기 다르겠지만, 삶의 어느 즈음 사람은 저마다 깊은 외로움과 마주할 때가 있다.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으며,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마땅히 이야기를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없는 그런 경우 말이다. 그래서 사람은 때로 아바타라는 대리인으로 존재하는 메타버스에서 가장 솔직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솔직해진다는 건 그만큼 본인을 돌아보고 이해해간다는 뜻이며, 어려움과 모순이 가득한 세계를 좀 더 포용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메타버스는 단순히 현실 밖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연장선에 있는 세계며, 그동안 감춰졌던 속내가 드러나는 현실의 그림자 같은 세계다. 또 때론 현실보다 더 절실해지거나 생동감을 주는 세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라도, 우리의 눈길은 현실을 향해 더 오랜 시간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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