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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당국회담 전격 제의, 근본해법 찾기와 새 접근대안 사이

  • Editor. 강성도 기자
  • 입력 2022.09.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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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강성도 기자] 4만3746명. 지난달 말 기준으로 1988년부터 남한에서 북한의 이산가족 찾기를 신청한 사람 13만3654명 중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생존자 수다.

이미 67.3%가 고인이 된 가운데 한 달에 300명 이상, 연평균 3% 이상의 신청자가 세상을 떠난다. 올해만도 2504명이 북녘의 가족을 가슴에 묻은 채 영이별을 고했다. 2000년 광복절부터 2018년 8월까지 모두 21차례의 남북 이산가족 대면상봉으로 만남의 소원을 푼 상봉자는 2.28%에 그친다.

생존자의 평균 연령은 82.4세. 연령대로 90세 이상(29.4%), 80대(37.0%) 등 8090 고령자가 3분의 2를 차지하는데, 남북의 고령화 추세를 고려할 때 이들의 생존 기간도 10여년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분단사의 응어리인 ‘이산가족’이라는 용어 자체도 잊힐 날도 멀지 않은 상황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4년 동안 멎어있는 '상봉시계'를 재가동하면서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 위한 남북당국회담을 제안하면서 부모와 형제의 생사조차 모른 채 70여년을 흘려보내야 했던 생존 가족을 더 이상 체제와 이념이 갈라놓을 수 없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 통계에 나타난 이같은 이산의 아픈 현실을 민족 최대명절 추석을 계기로 남북당국이 솔직하게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 전격 제의 배경이다.

8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서울사무소 이산가족민원실에서 직원들이 이산가족 상봉 신청서 자료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8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서울사무소 이산가족민원실에서 직원들이 이산가족 상봉 신청서 자료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권 장관은 8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장관 명의의 담화 발표를 통해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남북 당국간 회담을 조속히 개최하자고 북측에 공식 제안했다. 그는 "이산가족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지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당장 가능한 모든 방법을 활용해 신속하고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남북 당국간 회담 제안이다. 앞서 북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지난 5월 방역 협력을 위한 실무접촉을 제안한 적은 있지만 책임있는 당국자들이 테이블에 앉기를 촉구한 것은 처음이다.

권 장관은 “정부는 언제든, 어디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이산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모든 노력을 기울여 나갈 준비가 돼있다”며 “회담 일자, 장소, 의제와 형식 등도 북한 측의 희망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과거와 같은 소수 인원의 일회성 상봉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한번에 100명 안팎으로 만남 인원을 제한하는 등 보여주기식으로 흐를 수 있는 일회성 상봉 형식을 탈피해 책임자급 당국자들이 직접 만나서 생사 확인과 서신교환, 수시 상봉 등 근본적인 해결 접점을 찾아보자는데 방점을 찍은 것으로 풀이된다.

근원적인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의지는 회담 제안 주체의 변화에서도 읽힌다. 권 장관은 “통상적으로 이산가족 문제는 적십자사에서 제안했었는데 이번에는 당국자 회담을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산가족 문제와 같이 가장 기본적이고 인도적인 문제가 남북관계에 따라 영향을 받아 중간중간 단절되는 문제부터 코로나 방역상황에서 실제적인 상봉을 시행해나가는데 추가적인 조치까지 고려할 때 당국자 회담이 적절하다는 판단이다.

인도적 차원에서 거부하기 어려운 사안을 이례적으로 논의 채널을 격상시켜 제안한 것에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은 최근 대치 상황상 낮아 보인다. 방역 관련 제안도 북한이 전통문을 수령하지 않았고 북한 지도부의 대남 비방전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69주년 당일에 ‘응징’ ‘전멸’ 등의 거친 ‘말폭탄’을 동원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대남 공식 입장을 밝힌 데 이어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도 대남 비방전에 가세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맞물려 식량·인프라 지원 등 경제협력 방안에 정치·군사적 상응 조치까지 제공하겠다는 '담대한 구상'을 북한에 정식 제안한 것에 대해 김 부부장은 나흘 뒤 담화에서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비난하면서 "우리는 절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같이 새 정부 출범 초반부터 얼어붙은 남북관계에서 이산가족 문제는 ‘담대한 구상’과 병행되는 사안이라는 게 권 장관의 시각이다. 그는 “담대한 구상은 담대한 구상대로 가고 또 이산가족 문제를 포함해 인도적 문제는 인도적 문제로 병행해서 간다”며 “이들은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수단적인 관계이거나 선행하고 후행하는 관계가 아니기에 계속해서 병행시켜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이번 제안을 무시하거나 비난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제안해나갈 것”이라고 못 박은 이유다.

1985년 9월 남북한 고향방문·예술공연단 서울·평양 교환 방문으로 싹터 한국전쟁 발발 반세기 만에 남북정상의 6·15공동선언으로 꽃을 피운 이산가족 상봉.

경협보따리 등과 연계한 남북관계의 부수적인 성과라는 한계가 지적되기도 했던 이산가족 상봉은 정권별로 부침이 심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2000년 8월 이산가족방문단 교환(서울·평양)을 시작으로 6차례 성사된 뒤 노무현 정부에서 유일하게 진행됐던 화상상봉(6회)을 빼고도 10차례나 이어지며 절정을 이뤘지만 이후엔 5차례에 그쳤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두 차례씩 어렵게 명맥을 이어간 뒤 초기 대립으로 시작해 화해 무드로 바뀐 문재인 정부에선 2018년 8월 상봉 한번에 그쳤다.

이산가족찾기 신청자 중 생존자 현황 [그래픽=연합뉴스]
이산가족찾기 신청자 중 생존자 현황 [그래픽=연합뉴스]

인도적인 차원에서 접근되는 남북 이산가족 이슈는 정권마다 이렇듯 진폭이 컸지만 인권과도 맞닿아 있어 이제는 이를 고려한 새 접근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정상체제'의 국가를 지향한다면 북한도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관점에서 북한의 이산가족 ‘책임론’을 부각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들의 주장이 그것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한반도전략연구실의 안제노·이수석 박사는 전날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라는 이슈브리프 보고서를 통해 “남북 이산가족 문제는 더 이상 낙관론과 희망적인 사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며 남북 분단과 6·25 전쟁으로 발생한 이산가족들의 교류를 막은 북한 체제의 ‘책임론’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남한의 노력을 통해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만 여기던 인식에서 벗어나 유엔 북한인권보고서 공동발의 과정 등에서 북한의 성의를 촉구하고 국제사회와 함께 압력을 가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논지다.

국제사회에 ‘정상체제 국가’로 비치기 위해서는 늘 최하위권에 머무는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인식을 북한이 갖도록 해야 한다는 논거에서 이산가족 해결 노력은 북한으로서는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 요구는 정치적 반대·저항세력에 대한 탄압과는 달리 중국·러시아 등 전통적인 북한의 우방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면이 있다는 것도 뒷받침됐다.

집권 이후 ‘정상체제 국가의 지도자’임을 과시하고자 많은 공을 들여온 김정은 위원장이 이산가족 문제에서만큼은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보일지 주목되는 논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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