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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관통하는 자우림의 ‘낙천적 실패주의’…국내 최장수 밴드의 비결 (下)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7.05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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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여지훈 기자] 자우림은 이날 공연에서 지난 25년간 많은 팬으로부터 사랑받아온 24개의 곡을 한 곡 한 곡 열정을 다해 불렀다. 어떻게 그런 폭발적인 에너지가 나올 수 있는지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그중 ‘매직카펫라이드’, ‘밀랍천사’, ‘팬이야’, ‘하하하쏭’, ‘헤이헤이헤이’, ‘디어마이올드프렌드’, ‘스물다섯, 스물하나’ 등은 비단 팬이 아니더라도 귀에 친숙할 만큼 유명한 곡이었고, 이외에도 이선규 씨가 자우림의 정규 1집 수록곡 ‘욕’을, 김진만 씨가 정규 5집 수록곡 ‘거지’를 열창해 큰 환호를 받았다. 또 이날 자우림은 노래 중간중간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며 팬들과의 소통에도 정성을 쏟았다.

밴드 결성 25주년 공연에서 자우림은 노래 중간중간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며 팬들과의 소통에도 정성을 쏟았다. [사진=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제공]
밴드 결성 25주년 공연에서 자우림은 노래 중간중간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며 팬들과의 소통에도 정성을 쏟았다. [사진=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날 김윤아 씨는 “1997년 데뷔 당시 나는 그저 음악을 하고 싶어 휴학한 학생이었고, 사실 그것이 그렇게 좋은 계획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면서 “그래서 몸의 반 정도는 항상 절망의 늪에 빠져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거나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러다 다들 아시는 대로 ‘헤이헤이헤이’로 데뷔하게 됐고, 기적처럼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기자는 이날 이선규 씨와 김진만 씨의 매력을 처음으로 알게 됐는데, 간간이 무표정함 속에서 터져 나오는 이선규 씨의 유머와 그런 유머를 부드럽게 받아주며 흡사 콩트인 양 대화를 주고받던 김진만 씨의 존재는 자우림이 어떻게 그토록 오랜 시간 결속을 다져올 수 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해줬다.

이날 이선규 씨는 “2017년 밴드가 20살을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25살 청년이 됐다”면서 “자우림을 예쁘고 멋있게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고, 김진만 씨도 “지난 25년은 꿈만 같았다”면서 “이게 꿈이라면 깨지 않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놀랍게도 자우림의 팬은 현재도 꾸준히 불어나는 추세였다. 공연 도중 자우림 콘서트에 처음 참석한 이들을 묻는 말에 기자를 포함해 수백의 사람이 거수했는데, 이는 25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도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는 무언가를 자우림이 여전히 갖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은 이어진 김윤아 씨의 말을 통해 곧 해소됐다. 다만 이 부분은 오롯이 기자의 기억력에 의지했기 때문에 조금 각색된 점, 부디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라.

“자우림이 지금껏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우리의 노래 소재가 다양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 역시 가요의 가장 흔한 소재인 사랑에 대해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마저 많지 않았고 또 판에 박히지도 않았어요. 우린 그보다는 정의, 모순, 분노, 내면의 어두움, 인간 존재의 외로움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뤄왔고, 그 모든 기저에는 항상 ‘낙천적 패배주의’가 있었어요. 어차피 우리는 언젠가 다 똑같이 끝날 거라는 것, 그러니 존재하는 날은 모두 기적이라는 것….”

스스로 말을 음미하는 것이었을까. 김윤아 씨가 잠시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잠깐의 여백을 두고 그가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니 우리, 오늘을 춤추며 노래하자!”

자우림이 현세대에도 호소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인간이라면 언젠가 마주칠 수밖에 없는 근원적 외로움을 숨기지 않고 내뱉기 때문이며, 오히려 더 멋지게 오늘을 살아내자고 외치는 낙천적 패배주의 때문이다. [사진=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제공]
자우림이 현세대에도 호소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인간이라면 언젠가 마주칠 수밖에 없는 근원적 외로움을 숨기지 않고 내뱉기 때문이며, 오히려 더 멋지게 오늘을 살아내자고 외치는 낙천적 패배주의 때문이다. [사진=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렇게 다시 시작된 격한 환희의 무대. 또 한 번 모두가 환호하며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자는 이때만큼은 함께 열광하지 못했는데,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오래전 겪었던 외로움과 절망감이 새삼 물밀 듯 엄습했기 때문이었고, 잠시 뒤에는 ‘그래도 나 어찌어찌 잘 살아냈구나’란 스스로를 향한 대견함과 안쓰러움, 애잔함이 뒤범벅된 감정에 괜스레 울컥해진 탓이었다.

그리고 마음이 다시 안정을 되찾을 즈음에는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자우림이 여전히 현세대에도 호소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인간이라면 언젠가 마주칠 수밖에 없는 근원적 외로움을 숨기지 않고 내뱉기 때문이며, 오히려 더 멋지게 오늘을 살아내자고 외치는 저 낙천적 패배주의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음악에는 세대를 꿰뚫는 근본적인 무언가가 있단 확신이 들었고, 그때 기자의 눈에 들어온 자우림의 모습은 무대를 비추는 그 어떤 형형색색의 조명보다도 훨씬 빛나 보였다.

그렇게 3시간의 공연이 막을 내렸다. 체감상 그 절반쯤 지난 것 같은데, 시간이 어느덧 훌쩍 지나 있었다. 함께 갔던 지인도 “3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시간이 빨리 가서 아쉬움이 정말 크다”며 “겨울에도 콘서트가 있는데 그때를 다시 기다려야죠”라고 아쉬움을 달랬다.

기자는 ‘오늘을 춤추며 노래하자’는 자우림의 철학대로 어설픈 몸짓으로나마 열심히 손뼉 치고 몸을 흔든 탓인지 큰 미련은 없었다. 다만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함께 따라부르고 싶어도 가사를 몰라 그러지 못한 곡이 많았다는 점이다. 확실히 하룻밤 벼락치기로는 한계가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공연장에서 나오자 아직은 잔잔한 빛이 머물러 있는 하늘이 보였다. ‘자줏빛 비가 내리는 숲’이 열렬한 불꽃으로 승화해 올라간 것일까. 오후 8시가 가까운 시각이었음에도 컴컴하지 않은 하늘은 은은한 자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멀지 않은 거리에 롯데월드타워의 실루엣이 보였고, 그보다 더 위로는 새초롬히 초승달이 떠 있었다.

참으로 멋지고 기적 같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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